처음에는 그저 어학연수만 하고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었다. 무슨 미국 이민에 원대한 꿈을 안고 온 것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미국에 가서 일을 하신다고 하니 영어도 배우고 어머니 적응도 도울 겸 오게 된 것이다. 결국 가족들이 하나 둘 씩 다 따라왔지만, 다들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미국, 그 중에서도 척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텍사스로 온 것이다.
준비가 없기도 했고, 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뇌의 성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모든 시행 착오를 다 거쳐 간호사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멍청했던 덕분에! 미국 사람들이 간호사가 되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일했던 튜터링 랩이 학생들 진로 상담하는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후에 주립 대학교 간호 대학에서 조교로 그리고 교직원으로 일하면서 대학 입시에 관련된 정보도 여기저기 귓동냥으로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가듯이 미국 수능(SAT) 시험을 쳐서 그 점수와 함께 고등학교 성적 및 다양한 활동 기록들, 추천장 등으로 대학교에 정식 입학하는 방법이 있다. 성적이 우수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다.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이라면 주 정부에서 지원해 주기도 한다.
나같은 유학생들은 어학연수를 마치거나 아니면 바로 TOEFL 또는 IELTS 시험 점수와 함께 가고 싶은 대학에 지원하면 되는데, 유학생들은 대체로 Out-of-State 학비를 내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학교마다 규정이 다르겠지만, 잘 알아보면 유학생 이라도 장학금을 받는 경우 In-State 학비로 적용해 주기도 한다. 또는, 대학원생일 경우 연구나 수업 조교로 일하면 In-State 학비를 적용해 주기도 한다.
미국으로 유학오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4년제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운이 좋게도 커뮤니티 칼리지라는 지역민들을 위한 2년제 대학교 제도를 찾을 수 있었다. 대체로 미국 학생들이 4년제 대학교 과정 중 교양 수업들을 마치고 편입을 하기 위해 다니거나, 취업을 위해 전문 교육을 수료하기 위해 다니거나, 또는 직장인들이 또 다른 커리어를 위해 아니면 한국의 문화센터 처럼 취미를 위해 배우려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학비가 무려 4년제 대학의 절반 또는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 지역 거주민이라면 학비는 더더욱 저렴해 진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4년제로 편입할 때, 성적 장학금 이나 편입 장학금을 받게 되면 4년제 대학 학비를 In-State로 내면서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다양한 연령대와 이유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교류도 하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어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바로 그 커뮤티니 칼리지에 간호학 준학사 (Associate Degree in Nursing, ADN) 과정을 마치면 간호사 자격증 (Registered Nurse, RN)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4년제 과정과의 차이점은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기본 과정들을 수료한 뒤 간호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4년제 과정은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숨막히게 짜여진 학사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나같이 영어 실력이 부족한 유학생에게는 커뮤니티 칼리지가 수준에 맞았다. 물론, 커뮤니티 칼리지 간호학과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2년은 4년제 학사 일정 보다는 덜 하지만 빠듯하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ADN과 간호학 4년제 학사 (Bachelor Science in Nursing, BSN) 과정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RN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가성비로 본다면 ADN 쪽 투자 대비 수익이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ADN 과정에는 간호학 개론, 간호 관리, 간호 연구, 지역사회 간호 등과 같은 실무 외의 과목들이 빠져 있는데, 대다수의 대형 병원들 특히 Magnet 타이틀을 가진 병원들은 BSN을 갖춘 간호사만 고용 하거나 고용된지 1년안에 BSN를 취득하는 조건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ADN으로 취업을 하는데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유학생이라면 ADN을 먼저 마치고 RN 자격증을 취득한 뒤 1년의 OPT를 이용하여 중소 병원, 도시 외곽 또는 격오지 병원 같은 비선호 지역 병원에 근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듯 하다. OPT가 끝나는 대로 바로 RN to BSN 과정을 수료하게 되면 1년 경력을 가진 BSN 간호사가 되기 때문에 조금 더 취업이 수월해 지는것 같지만, 결국 유학생 신분 때문에 취업할 수 있는 곳들이 제한적이란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미국에서 간호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분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학생 비자로 어학연수 1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교양과목 2년, ADN 과정 2년 반, OPT 1년, RN-BSN 1년, OPT 1년, 대학원 2년 반, OPT 1년 다 마치고 취업 비자 4년 (3년 + 1년 갱신) 끝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신분 해결이 안되면 나처럼 고생할 수 있으니 미국에 살고자 한다면 군대를 가던, 결혼을 하던, 닭공장을 통해서 받던 일단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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